돈의 역사 리뷰, 중국인들이 금과 은을 좋아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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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필자가 홍춘욱 작가님의 돈의 역사 1에 감명과 충격을 받아 너무 좋은 책이라 생각하여 공유하고자 돈의 역사 2를 읽으면서 책 내용을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요약하여 전달하는 글로 상당 부분의 다른 중요한 내용들과 보충 내용은 책에 기재되어있으므로 반드시 책을 구매하여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원나라때 교초 등 신용화폐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었기 때문이다.

 

  남송때 발행한 지폐인 회자는 매우 잘 사용 되었다. 

 회자에는 유통기한이 있었는데

유통기한을 두었던 이유는 회자가 민간의 신뢰를 얻을 것이라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돈에 유통기한? 만기된 회자를 정부에 들고 오면 은이나 비단으로 교환해준다는 사실을 실제로 보여주어 회자의 신용을 지키려 하였다.

 그러면 왜 신용화폐는 무너졌을까? 

  당시 세금을 가장 쉽게 걷는 방법은 관세였다. 해외에서 남송으로 들어온 배의 안전과 상거래를 보장해주는 대신 세금을 걷음으로써 상거래를 활성화시키고 세금도 손쉽게 걷을 수 있었다. 그 세금으로 강한 해군을 육성했고 잘 버텼다.

 그러나 몽골의 침략으로 전쟁이 길어지면서 전쟁 비용을 관세만으로 해결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전쟁비용을 회자의 발행으로 막으려다.(송나라 개혁 정치 때를 기대하고 시행한 것 같다.) 전쟁 중 발행한 통화량이 4배까지 달하면서 결국 몽골에 침략을 당하고 몰락했다.

송나라 화폐 교자(지폐) 출처-위키피디아

 

 전쟁은 안 좋은 영향만 있을까?
그건 아니다. 중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해가 된다. 경제가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버려진 땅에도 농사를 지으면서 식량 생산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동전의 생산은 그에 맞게 늘지 않으면서 곡물 값이 폭락하는 디플레이션이 발생한 것이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농민들의 삶이 힘들어진다. 농민 1명이 생산하는 곡물은 양이 정해져있는데 곡물은 너무 많이 늘면서 농민들의 이윤이 하락하여 농민이 힘들어진다. 빚을 갚지 못하면서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행한 것이 전쟁이다. 전쟁으로 수많은 젊은 사람이 전쟁에 나가게 되면 농사 인구는 줄어들고 군량미이 지출은 늘어난다. 곡물 비축량이 순식간에 줄어 곡물의 가격이 다시 상승하게 되면서 디플레이션이 해소된다.

 

 여기까지로는 금과 은으로 넘어간 이유로 부족하다.

 남송이 개발한 신용화폐시스템은 몽골 제국에서 더 번창했다. 몽골에서 사용된 중통교초 1천냥은 은 50냥과 교화하도록 규정했지만 액면가가 너무 높아 사용이 어려웠다. 그러다 중통원보교초를 새로 발행하여 액면가로 은 반양의 값어치를 하는 것으로 정했다. 우리가 아는 만원권, 오천원권과 같은 개념인 것 같다.

그러나 지폐의 가치가 온전치 않았다. 원나라 지배자들은 은괴 확보에 더 많은 관심을 두었는데 그러면서 교초의 발행량을 늘려 액면가에 비해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어 전염병이 유행하면서(흑사병으로 추정한다.)인구가 줄어들어 상거래가 줄고 국가 재정이 악화 되었다. 이러한 사건들 때문에 신용화폐에 대한 불신이 생기면서 은, 귀슴속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는데 당시 일본에서 황금 1냥의 값이 630문 이었던 것에 비해 중국은 40000문으로 차이가 컸다. 그러면서 차익거래로 일본에 중국 화폐가 많이 넘어간 것 같다. only 내생각. 

 

ps. 동전 혹은 귀금속의 가치가 너무 상승해버리면 동전으로 거래를 할 수가 없다. 현물화폐시스템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러면 더더욱 상거래가 줄고 때문에 전업인구가 줄어든다. 그렇게 되면 경제가 침체된다. 한마디로 지폐시스템은 사라진 디플레이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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