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역사1 리뷰, 유럽과 전쟁과 돈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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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필자가 홍춘욱 작가님의 돈의 역사 1에 감명과 충격을 받아 너무 좋은 책이라 생각하여 공유하고자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요약하여 전달하는 글로 상당 부분의 다른 중요한 내용들과 보충 내용은 책에 기재되어 있으므로 반드시 책을 구매하여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홍춘욱)
전쟁도 돈이다

  영국 해군이 막강했던 이유

 영국 왕실은 수많은 품목으로 세금을 걷고(벽난로 세 등) 채무불이행을 행하였는데
명예혁명 이후 윌리엄 3세를 왕으로 앉힌 뒤 세금을 걷을 때는 의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면서 왕실은 이후 한 번도 연체를 하지 않았고
영국 국채금리가 10%에서 2.74%까지 떨어졌다.
 이로 인해 왕실은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하여 거대한 함대를 건설하고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행할 수 있었고 영국은 막강한 해군을 육성하여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와 함께 우리가 알던 과거의 영국이 될 수 있었다. 

 
 윌리엄 3세가 왕의 자리에 앉으면서 네덜란드 금융을 받아들였다.
네덜란드 금융을 받아들였다고? 네덜란드 금융이 뭐가 대단했기에 영국을 저토록 강력하게 만들어 주었을까?
 

  네덜란드  

유럽은 본래 영주가 자신의 농노를 보호해 주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해준다는 명목하에 장원제도를 운영하는 곳이 많았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달랐다. 네덜란드는 개간한 땅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귀족과 교회가 섣불리 소유권을 주장하기 어려웠고 과거 무한책임으로 사업을 실시하기 힘들었던 것과는 달리 대향해 시대에 들어서면서 유한책임으로 변화하면서 사업을 행하기 조금 더 쉬워진 것도 한몫 했다. 이렇게 네덜란드 사람들은 실용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자신의 의사를 펼칠 수 있었다.

무한책임
사업성공과 실패에 대한 책임을 모두 대표 사업자가 지는 것이다.
유한책임
주식회사와 같이 사업에 시래하더라도 자기가 투자했던 지분만 포기하면 더이상 책임을 추궁 당하지 않는 것이다.
실용주의
사상, 생각이 결과의 유효성에 실험적 검증을 통하여 객관적으로 타당해야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당시 남부 네덜란드를 통치하던 스페인의 종교 억압과 막대한 세금으로 인해 반란이 일고 있어 네덜란드 정부는 대항해 시대에 해외시장을 개척할 여력이 없어 민간자본을 육성해야 했는데 이때 등장한 것이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 회사다. 초대 주주가 1143명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자본이 유입되면서 용병을 쉽게 고용할 수 있었고 소유권이 경영권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중요한 의사는 의회에서 결정하고 투자자는 결정을 따르면 주식을 사고 반대하면 주식을 파는 식 그리고 배당금을 지급하는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주식거래를 하는 것처럼 운영되었다.
 처음 우려로 21년간만 운영될 계획이었던 동인도 회사는 예상과는 달리 너무 잘 되었다.

 
네덜란드 남부를 통치하던 스페인은 군대는 강했는데 왜 이를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을까? 

 

  스페인  

 스페인은 사상최대규모의 은광을 소유하고 있었고 풍부한 은맥을 발견하는 등 운이 매우 좋았다. 그러나 네덜란드병이라 알려진 이 현상으로 스페인 경제는 망했다.
 스페인은 은과 귀금속이 너무 많아져 네덜란드 병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스페인의 제조업이 죽으면서 아메리카 대륙 운영을 위해 보내야할 제조업으로 생산 가능한 물품(시계, 가구, 모직물) 공급이 부족하기까지 했다.

네덜란드 병
네덜란드는 천연가스의 수출로 해외 화폐(자본, 임시로 달러로 표현하겠다.)이 대거 들어오면서 상대적으로  네덜란트 화폐인 굴덴화의 가치가 크게 상승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환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이로인해 네덜란드의 물가가 상승하고 급격한 임금상승으로 이어졌다. 제조업 품목을 수출해야하는데 벌어오더라도 환율 때문에 얼마 못벌어 들이게 되는데 임금은 너무 비싸니 망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비싸게 수출하면 또 안팔리니 망할 수 밖에 없었다.

네덜란드 병에 의한 경제 악화도 힘든데 당시 스페인은 전쟁을 끊임없이 행하면서 재정부담이 날로 늘고 생산에 투입될 인원이 전쟁에 투입되면서 스페인의 생산 능력은 추락했다. 경제가 좋지 않은 스페인이 네덜란드를 침략하기는 사실상 힘들었다 할 수 있다.
대강국이었던 프랑스는 어땠을까? 왜 한번도 가장 강한 나라가 될 수 없었을까?
 

  프랑스  

프랑스도 돈이 없었다. 신용도 바닥이었다.
 프랑스는 전쟁으로 부채가 어마어마 했는데 그 부채를 메우려면 세금을 걷어야하지만 이미 세금이 국민 소득의 31% 였고 40%인 적도 있었다. 심지어 특권층은 세금을 내지도 않았다. 
 프랑스가 들고온 것은 왕립은행 설립과 미시시피 회사였다. 미시시피 회사는 프랑스의 해상 상업적 권리를 독점하고 프랑스 왕립은행과 합병하여 중앙은행이 될 예정이었고 프랑스 사람들은 미시시피 회사 주식가격이 급등하자 환상을 품고 투자였으나 프랑스 왕실 인사가 먼저 차익을 실현하는 배신으로 주식 작선으로 변모하여 떡락하면서 국민들은 큰 손실을 입고 프랑스 은행과 지폐에 대한 불신만 커져갔다.
 또 왕립은행을 설립하면서 화폐 발행권은 왕실이 유지하였는데 미시시피 급등 속에 숨어 화폐의 발생으로 부채를 일소하여 불신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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