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역사 리뷰, 화폐에 대한 신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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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필자가 홍춘욱 작가님의 돈의 역사 1에 감명과 충격을 받아 너무 좋은 책이라 생각하여 공유하고자 돈의 역사 2를 읽으면서 책 내용을 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을 요약하여 전달하는 글로 상당 부분의 다른 중요한 내용들과 보충 내용은 책에 기재되어 있으므로 반드시 책을 구매하여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s://dazabamuker.tistory.com/entry/돈의-역사-리뷰-화폐에-대한-신뢰-1

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파운드는 어떻게 신뢰를 얻었을까?   

파운드는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기능을 하기 전까지 기축통화로서 작용을 했는데 어떻게 그 기능이 가능했을까?

과거 곡물 생산이 늘어 디플레가 발생하면 전쟁을 했다고 앞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매번 그렇게 행하기 힘들어 선택했던 방법이 주화의 품질저하이다. 즉, 주화의 귀금속 양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면 주화의 생산량이 늘어 디플레를 다소 완화할 수 있었지만 결국 순도 높은 주화는 부잣집으로 가고 순도 떨어지는 주화만 거래되다 보니 주화가 사용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당시 스페인과 프랑스의 순도는 영국보다 떨어졌는데 영국은 명예혁명 이후 동전 테두리를 오돌토돌하게 만들어 동전을 조금씩 깎아내는 것을 방지하고 테두리가 깎여나간 동전 사용을 금지하면서 낡은 주화 사용도 금지해 원나라 이후 처음으로 국가가 보장하는 종이 화폐가 다시 발행되었다. 한마디로 정해진 비율로 지폐를 금으로 교환해 주면서 신뢰를 높였다. 

 

   과거 대한민국은?   

 1950년대 전쟁비용충당과 생산시설복구를 위해 화폐를 마구 찍어내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고 박정희 정부에서 경제성장 정책을 수행하면서 환율이 상승하여 수입제품가격이 상승하고 따라서 매점매석까지 일어나면서 투기가 증가했다. 

 이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생기는 계산과 회계기장의 불편을 위해 1962년 박정희 정부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긴급통화조치를 발표해 10 환을 1원으로 바꾸는 리디노메이션(화폐단위 변경) 결정했는데

 

* 국민 자산 가늠 목적(부정한 돈을 회수할 목적)
* 교환한도 불충분(늘어날 예정이었지만) 
* 이자율을 낮게 책정(기업의 사업 추진을 위해) -> 국민들의 예금을 기피
* 예금동결조치(사채동결) - 당시 사채가 많아 금융기관이 건실하지 못해 기업의 자금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했다. 

 

 등의 이유로 불만이 많았고 결국 박정희 정부는 단계적으로 예금동결조치를 해제했다. 

 박정희 정부의 리디노메이션은 수량제한과 기한을 두고 인적 정보 수입목적성까지 띄면서 실패했고 할 수 있다. 당시 정책과 사채상황을 통해 신뢰가 나빴는데 알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2009년 새로운 화폐 발행(원래 사용되던 화폐의 1/100 수준)했다.

당시 암시장 경제를 박살 내기 위해 세대당 교환 가능 액수를 10만 원으로 한정(당시 45kg의 쌀 밖에 살 수 없는 액수이다.)하면서 시간도 24시간뿐이었다.

이에 물물경제, 외국화폐(달러, 위안화)를 주로 사용하는 국가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물가도 약 40배 상승하고 달러의 가치도 상승하게 되었다.

 

    그럼 조선은?    

당백전 대규모 주조로 인해 인플레로 쌀값이 5~6배 상승해 버렸다. 이로 인해 신뢰를 상실했고

개항 이후 해외화폐(일본 은화, 멕시코 페소화)를 사용하게 되는 개기가 되었다. 이렇게 재정이 박살이 났으니 군사력 확보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돈의 바탕은 신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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